“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연휴 잘 보내세요!”


  내일부터는 크리스마스 연휴인 덕분에, 먼저 일어서는 해리에게 건네는 오러들의 인사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해리도 빙긋 웃으며 인사하고는 오러국 사무실을 나섰다. 연휴라고 범죄가 없는 건 아니라 혹시 사건이 터지면 나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비번인 국장에게까지 보고가 올라올 정도로 큰 사건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간간히 지나가는 마법부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해리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해리에게 요 몇 년간 중에서도 올해 크리스마스가 특히 특별한 이유는, 제임스가 학교에 들어가고 첫 번째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학교에서 얼마나 재미있게 지내고 있는지는 간간히 날아오는 제임스의 편지뿐만 아니라 그리핀도르 사감 네빌이 보낸 학부모 통지에서도 절절하게 느껴졌지만, 어제 약 4달 만에 집에 돌아온 제임스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조리 말할 기세로 아빠나 엄마, 알, 심지어 릴리에게도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야 호그와트에서의 1학년 생활이라면 신날 수밖에, 해리는 괜히 흐뭇하게 웃으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국장님! 포터 국장님! 잠시만요! 포터 국장님!”


  엘리베이터 문으로 막 들어가는데 복도 끝에서 해리를 부르는 간절한 외침 소리가 들렸다. 해리가 멈칫해서 한 발 짝 뒤로 물러나자 저만치에서 팔을 붕붕 저으며 뛰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급한 용건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해리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먼저 보내고는 나와서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해리 앞까지 뛰어온 그는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면서도 씽긋 웃으며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 어, 네. 메리 크리스마스.”


  가슴에 달고 있는 뱃지를 보면 마법부 직원은 맞는데, 모르는 얼굴인 걸 보면 오러국 소속은 아니다. 모르는 사이라도 씩씩한 인사가 나쁠 것은 없지만, 설마 인사하려고 그렇게 급하게 뛰어온 것은 아닐 터였다. 해리가 의아해하는 사이 그는 그제야 큰 숨을 내쉬고는 자기소개를 했다.


  “머글 문화유산 오용 및 단속 관리부의 제인 카터입니다! 해리 포터 국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해리가 짧게 대답을 맺었음에도 제인은 뭔가 말이 더 이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눈을 빛내며 해리를 보고 있었다. 이런 반응은 해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았는데, 어려서부터 해리 이야기를 듣고 자란, 이른바 ‘해리 포터 키즈’라고 불리는 세대가 해리를 만났을 때 보이곤 하는 드물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인 카터란 친구는 좀 열렬한 편인지, 당장이라도 싸인해 달라고 외칠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흠, 카터양?”

  “아 맞다, 이거 드리려고요.”


  해리가 헛기침을 해주자 제인은 그제야 생각난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자랑스러운 얼굴로 해리에게 내밀었다. 시즌에 걸맞게도 빨강과 초록, 금색이라는 크리스마스 컬러의 리본 장식이 붙어있는 그것은 갈레온 금화 크기만한 거울이 가운데 붙어있는 작은 팬던트처럼 보였다. 선물이라면 조금 곤란하다. 해리는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이게 뭐죠?”

  “오늘 머글이 마법 물품을 사용하는 걸 포착하고 외근 다녀왔거든요! 보니까 머글 물품에 마법이 걸린 게 아니고, 원래 마법 물품이었는데 어떤 경로였는지 머글 기념품 가게에서 샀다더라고요. 그 여자분이, 아, 가지고 있던 머글이 여자분이었어요. 암튼 그분이 그거 되게 신기하다고 막 그러는 걸 보면 벌써 써본 것 같아서,”

   “그럼 제가 받을 게 아니라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마법부에서 보관하는게 맞겠네요.”


  이대로 듣고 있으면 오늘 있던 일을 전부 말할 기세라, 해리는 적당한 곳에서 일단 제인의 말을 끊었다. 그쪽 부서의 업무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선에서의 처리는 그랬다. 마법 물품이 정상적인 경로로 머글 세계로 유통될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 장물이거나 유실물이기 때문에 주인을 찾을 수 있으면 반환하고 아니면 마법부에서 일정기간 동안 보관한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인은 씩 웃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국장님이 주인이세요. 아니면 적어도 연고자.”

  “네?”


  해리는 의아해하며 다시 팬던트를 보았다. 크리스마스 리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거울 주변의 장식이 이제 보니 꽤 고풍스럽고 낡은 무늬로 채워져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거랑 자기가 무슨 상관인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짐작이 가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제인은 자신있게 단언했다.


  “아니, 판단 정도가 아니라 확실합니다. 그건 국장님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 틀림없어요. 연고자 환부절차와 관련된 서류는 제가 이미, 그러니까 방금 전에 다 처리해서 보내드렸고요. 아마 지금 국장님 자리에 도착해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대로 가져가시면 돼요.”


  환호라도 지를 것 같은 조금 전까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져서 정말로 공식 사무를 처리하는 단호한 투의 말에 해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뭔데요?”

  “거울이죠, 보시다시피. 다만, 특별한 거울이더라고요.”


  이런 식의 에두른 대답은 보통 스스로 알아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해리는 물론 어떤 특별한 거울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이런 작고 동그란 모양이 아닐뿐더러 두 개로 나눠진 것 모두 어디에 있는지 해리가 알고 있었다. 해리는 잠시 제인을 보다가 그가 들고 있는 거울 팬던트를 다시 보았다. 동전만한 크기의 거울이 흔들리며 해리의 얼굴이 잠깐 비쳤다.


  “좋아요, 잘 받았습니다.”


  해리가 마침내 손을 내밀자 제인은 환하게 웃으면서 팬던트를 건넸다.


  “틀림없이 마음에 드실 거예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씩씩한 말투에 해리는 픽 웃으면서 받아들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주는 것 같기도 했다. 보아하니 딱히 위험한 물건도 아닌 것 같고, 문화유산 관리부 직원으로서 자신에게 연고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세한 경위는 환부 안내서에 적혀있겠지만, 지금 그걸 가지러 사무국으로 도로 가볼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어차피 연휴이니 천천히 읽어봐도 될 터였다.


  이제 용건을 다 마쳤는지 제인이 약간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해리는 ‘그럼,’ 하고 간단하게 대화를 맺어주었다. 제인은 꾸벅 인사를 하고서도 감탄한 표정으로 흘끔거리면서 미적미적 돌아갔다. 다시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 말고 해리는 픽 웃었다. 손끝에 걸리적거리는 리본은 아무래도 제인이 달아놓았을 것 같았다.




  해리가 순간이동으로 집에 도착했을 때 약간 어두운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빠!”


  아니,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해리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혼자 남아있던 제임스가 격하게 반가움을 표시하며 해리에게 풀썩 안겼다. 네 달 못 본 사이에 꽤 컸는지 9월에 학교로 보낼때랑은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해리는 빙긋 웃으며 제임스와 눈을 마주치고 물었다.


  “혼자 있었어?”

  “어, 엄마는 알이랑 릴리 데리고 먼저 갔어.”

  “젬은 왜 같이 안가고?”

  “아빠 기다렸지!”

  “역시 우리 아들.”


  제임스는 의기양양하게 씩 웃었고 해리는 웃음을 삼키며 그 등을 토닥여주었다. 동생들 앞에서는 자기가 형, 오빠임을 꽤나 의식하곤 하는 제임스이다보니 그 반대급부인지 알버스나 릴리가 없을 때는 유난히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아빠 이게 뭐야?”


  그 때 제임스가 해리의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리본을 발견하고는 쭉 잡아당겼다. 그 새 모양이 망가진 리본 끝에 거울이 달랑거리며 매달려 나왔다.


  “그거 음, 그냥 거울. 아빠 책상 위에 갖다놔 줄래? 아빠 옷만 갈아입고 나올 테니까.”

  “어어.”


  해리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대답하자 제임스도 별 흥미없다는 표정이 되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제임스를 다시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안으로 들어갔다. 제임스는 흐음, 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성의 없는 태도로 리본을 잡아 붕붕 흔들며 해리의 서재 쪽으로 걸어갔다.




  서재로 들어온 제임스가 막 책상 위에 내려놓으려 할 때 거울에서 약한 빛이 반짝였다. 한순간이었지만 방 안이 어두웠기 때문에 분명히 느꼈다. 제임스는 한번 눈을 깜빡였다가 씩 웃고는 자기 지팡이를 꺼냈다. 열한살이 된 제임스에게 생긴 멋진 일 중에서 자기의 지팡이를 가지게 된 것은 분명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일이었다. 제임스는 지팡이로 거울을 톡 건드렸다. 거울은 다시 반짝 하면서 빛을 냈다.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제임스가 톡톡톡, 계속 지팡이로 거울을 건드렸을 때, 이번에는 빛이 아니라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헤이.]

  “으앗?”


  쾌활한 목소리가 말을 거는 바람에 제임스는 잠깐 놀랐다. 유령, 아니면 통신기일지도 몰랐다. 제임스가 눈을 반짝이는 사이에 거울에서는 방금 전과 다른 목소리가 같이 들렸다.


  [아까랑 다른 사람인데?]

  [그러게. 결국 가져왔나 보네. 하여간 쓸데없는 일에는 빨라.]

  [내 말이. 그럼 그 쪽은 마법부 소속?]

  “아닌데.”

  [오. 그럼 누구?]

  “제임스 시리, …… 그 쪽은?”


  별 생각없이 대답하다 말고 중간에 멈춘 제임스가 질문을 되돌렸다. 그러나 그쪽은 제임스가 묻는 말에 대답은 안하고 오히려 되물어왔다.


  […… 뭐? 너 지금 ‘제임스 시리’ 라고 했어? 그거 네 이름?]

  “아무에게나 가르쳐주는 이름 아닌데?”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와서 당당하게 대답하는 제임스에게 거울 너머에서 낄낄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약간 다른 식으로 질문해왔다.


  [좋아, 그러면 하나씩 묻고 답하기 어때? 이쪽은 둘이니까 먼저 할게.]

  “음, 그렇게 하자. ……?”

  [너 ‘포터’야?]


  제임스가 뭔가 이상한 룰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저 쪽에서 단번에 정곡을 찔러왔다. 제임스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대답했다.


  “나 알아?”

  [흠. 아마 널 아는 사람을 알지.]

  “날 아는 사람은 많아. 그 쪽 누군데?”

  [오, 꼬마 포터, 이미 넌 질문을 했으니까 이 쪽 차례야.]


  꼬마라고 불렸음에도 제임스는 오히려 씩 웃었다. 해리 포터 주니어를 아는 사람은 마법세계에 많고 많았으나, 저런 장난스러운 말투는 기분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묘하게 친근감이 들었다. 그 때 밖에서 해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제임스는 서재 문 쪽을 한번 보고는 거울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아빠다.”

  [‘아빠’?]

  “응, 우리 아빠. 질문 했네, 이쪽 차례야.”

  [푸핫, 금방 배우는데.]

  [좋은 거 알려준다.]

  “그쪽은 아빠가 잡아서 거기 있는 거야?”

  [잡아서? 아냐. 잡혀있는 게 아니라, 이걸로 얘기하는 거야. 아마 우린 꽤 멀리 떨어져 있을 거 같은데.]

  [생각보단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긴.]

  “흠.”


  듣자 하니 이 거울은 일종의 통신기인 모양이다. 마법부 소속이냐고 먼저 물었던 거 보면 뭔가 위험한 물건인 걸까? 하지만 해리는 분명 별 거 아니라고 말했다. 약간 호기심이 생겨서 제임스는 거울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그 쪽들은 누구야?”

  [질문 한 번 달아둘까. 음 그러니까-, 난 Horns, 이쪽은 Hardhand.]

  “달아두긴, 지나가면 끝이지. 혼즈, 하드핸드? 이상한 이름이네.”

  [푸하, 한 방 먹었네.]

  “쉿.”


  제임스의 신호가 있고 바로 조금 후에 서재 문이 더 열리더니 옷을 다 갈아 입은 해리가 안으로 상체만 쑥 들이밀었다.


  “젬? 혹시 지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었어?”

  “어-”


  거울을 손에 쥔 채 제임스가 해리를 보면서 잠시 말을 흐렸으나 거울은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게 무색하게도 조용했다. 해리는 별 의미를 두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는지 그저 ‘갈까?’ 하고 말했다. 냉큼 ‘네-’ 하고 대답하고 해리 쪽으로 쪼르르 오면서 제임스는 쥐고 있던 거울을 자기 주머니에 쏙 넣었다.




* * *




  조금 전까지 또랑또랑한 앳된 목소리를 전해주던 거울은 이제는 평범한 거울처럼 그들의 얼굴만 비추고 있었다. 그쪽과의 연결을 끊은 제임스는 거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2014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라.”

  “알아서 처리하겠다더니 제대로 갖다줬나본데? 꽤 센스있네, 그 사람.”

  “희망적인 미래로군, 마법부가 제대로 일을 한다니 말이야.”

  “동의. 그리고 그게 ‘포터’ 손에 들어갔단 말이지. 재밌게 됐는데?”

  생각지 못한 우연에 시리우스와 제임스는 눈을 마주치고 씩 웃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들이 꼭 같은 장소에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시리우스가 제임스와 하나씩 나눠가진 거울은 어디에 있든 서로에게 연결시켜주곤 했다. 덕분에 가끔은 굳이 알지 않아도 좋을, 예를 들어 둘 다 거울의 연결을 끊는 것을 깜빡한 나머지 제임스가 릴리에게 건네는 밀어를 시리우스가 듣게 된다든가 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런 해프닝을 제외하고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거울이 갑자기 먹통이 되었을 때 둘은 약간 당혹해 하면서 거울을 가지고 만났다. 주로 떨어져 있을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보니 서로가 가지고 있던 것을 보는 건 매우 오랜만이었다.


  ‘왜 안될까.’

  ‘음.’


  원래 이런 기술적인 문제는 관련 분야의 장인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겠지만, 이런 특이한 물건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를 상정하는 것부터가 일단 난항이었다. 시리우스도 원래 하나였던 거울을 나눈 거라 서로를 연결시켜준다는 것 말고는 그 유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만큼 오래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어, 이거 봐.’


  별 의미 없이 거울을 톡톡 건드리던 제임스가 거울을 나란히 놓더니 그쪽을 가리켰다. 거울은 완전한 직사각형이 아니라 흐트러진 사각형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둘 다 그런 세세한 디테일에 신경써서 각을 맞추는 성격은 아니다보니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한데 모은 김에 원래 그랬을 것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붙여놓으려다 보니 두 거울 사이의 아래쪽으로 비는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딱 두 개로 나뉘었던 게 아닌 건가?’

  ‘그럴 수도. 근데 이 부분은 꽤 작은데? 갈레온 정도?’

  ‘흠. 안되는 거랑 뭔가 관계 있나?’

  ‘글쎄, 한 번 찾아볼까?’


  사실 빠진 조각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고 마법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거울에 걸려있던 마법은 오래된 만큼이나 아주 강력했다.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뭐야, 안되나.’ 하고 생각할 즈음, 원래 하나였던 작은 조각에서 반응을 보내왔다.


  […… 꺅! 뭐, 뭐야?!]


  여자 비명소리였다. 의외의 진행에 서로 눈을 마주친 둘은 재미있게 되어간다는 생각에 그 쪽과 대화를 시도했다. 상대는 거울이 달린 팬던트에서 갑자기 빛이 나오더니 이젠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에 기겁하고 있었고, 그를 진정시키느라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의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그쪽이 마법에 대해 모르는 머글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


  ‘그거 원래 내 껀데, 어디서 났어요?’

  [네? 무슨. 제가 산건데요.]


  갑작스런 소유권 주장에 그쪽은 대번에 반발했다. 듣자하니 어느 노점상에서 팔던 걸 샀다는 모양이다. 제임스는 으쓱하고는 슬쩍 구매 경위를 물었다. 노점상 주인이 행운의 거울이라며 꽤 비싸게 불렀는데 골동품 같은 모습이 왠지 끌려서 지불하고 받아들 때, 마지막에 이상한 주문 같은 걸 외우면서 지팡이 같은 걸로 톡 쳤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 작은 거울 조각은 시리우스가 집에서 가지고 나오기 한참 전에 이미 떨어져나가 그동안 연결이 끊어진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이번에 드디어 본체와 연결된 모양이다.


  ‘찾으러 가야겠지?’

  ‘그치? 일단 만나죠?’

  [아니 제가 만날 이유가.]

  ‘그거 우리한테 중요한 거라서요. 일단 만나서 얘기라도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셔도요…….]


  저쪽에서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서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장물일 확률이 높다고는 해도 벌써 몇 년, 어쩌면 몇 십년이나 몇 백년이나 지난 얘기였으니 이제와서 주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이유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만나자고 한다면 불편해할 만도 했다. 어떻게 설득할까 생각하다가 제임스는 문득 시리우스를 흘끔 보았고,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거울에 이쪽 모습 보여요?’

  [어? 아뇨, 목소리만…… 이거 페이스 타임도 되는 거였어요?]

  ‘페이스 타임……? 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 될 지 모르겠지만. 자 가라 패드풋.’


  시리우스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지만 제임스는 빙글빙글 웃으며 ‘잘해라 파이팅’ 어쩌고 하면서 기도 안차는 응원이나 보내고 있었다. 어쨌든 시리우스도 설득에 별 관심도 재능도 없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거울에 투영마법을 걸었다.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으로는 거울 자체의 능력으로 얼굴까지 보여주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마법이었다. 다행히 그 작은 거울로도 보이긴 보였는지 반응이 바로 왔다.


  […… 와.]

  ‘…… 우리 한 번 만날까요?’


  자기 쪽으로 눈총을 보내면서 약속을 잡는 시리우스 옆에서 제임스는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러나 약속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일단 ‘내일 이시간은 어떻냐’는 시리우스 말에 그 쪽이 난색을 표했던 것이다.


  [내일 이 시간이면 밤…… 에요? 너무 늦는데. 낮에 만나면 어때요?]


  제임스는 창밖을 보았다. 창밖은 분명 쨍쨍한 낮이었다. 어쩌면 거울이 영국 아니라 어디 다른 먼 데로 가있는 지도 모른다.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장소를 물었고, 영국, 그것도 런던이라는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였는지 그쪽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물었고, 마침내 설마설마하며 날짜를 물어서 서로에게서 2014년과 1978년이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거울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시간이동이란 마법사에게도 어려운 개념이다. 그런데 시간을 넘어서 거울이 연결됐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시리우스와 제임스가 잠깐 고민하는 사이 거울 너머에는 또다른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뭔가 당황스러운 듯 빠르게 대화하는 소리가 여러 번 들리더니, 거울에서 다시 제대로 빛이 반짝 나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머글 문화유산 오용 및 단속 관리부의 제인 카터입니다. 귀하는 마법 물품을 이용해서 머글과,]

  ‘허, 마법부.’

  [직접 대화를 하였으므로, 이 시간부로 본 단속 관리부에서 처리를 맡게 되었,]

  ‘빠르네. 웬일로.’


  정작 죽음을 먹는 자들에 대한 대응은 느려터진 주제에 쓸데없이 이런 일에만 빠르게 움직이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2014년까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설친다는 것도 말도 안되는 일이긴 했다. 그 때쯤이면 다들 어떻게 돼있을지 궁금증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제임스는 시리우스를 보았다.


  [습니다. 본 물품에 대한 처리는 향후 진행에 따라 서류로 통보됩니다.]

  ‘어떡할까?’

  [귀하의 성명과 주소를 알려주시면 적절한 처분이 부엉이 우편으로,]

  ‘풉.’

  [송달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허가없이 머글에게 마법을 사용해서 접선한 귀책사유를 물어,]


  부엉이 우편이라는 말에 제임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쪽 세계의 마법부에서도 거울이 시간을 넘어서 연결되었다는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어쨌든 거울을 회수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제임스도 시리우스도 잠깐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거울 너머로 새로 나타난 마녀의 비명이 들렸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패드풋이요? 저기요, 설마, 그럴리가? 패드풋이시라고요?]

  ‘??’


  시리우스와 제임스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아까 언뜻 패드풋이란 말을 흘리기는 했다. 아마 거울 너머에서 머글에게 사정청취를 하다가 패드풋이란 이름이 나온 모양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격한 반응이다. 시리우스를 아는 마녀면 그럴 만도 한가, 하고 제임스가 막연히 생각하는데, 거울 너머에서 열렬하게 물어왔다.


  [바, 방금 그 쪽은 1978년의 세계라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패드풋이세요?! 그럼 서, 서 설마 프롱스도 있으세요?!]

  ‘어- 일단 전부 예스.’

  [말도 안돼, 말도…… …… !! 아! 저기, 제가!!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매우 흥분한 말을 남기고 연락이 끊어졌다. 다시 말을 걸어도 응답이 없는 것을 보면, 그 말마따나 ‘마법부에서 처리중’인 모양이다. 이런 식의 타의에 의한 전개는 그들이 썩 좋아하는 방향이 아니었으나, 약 하루 후 거울은 ‘포터’에게 전해졌다.




  “네 손자쯤 되나?”

  “글쎄, 아들일 수도 있지? 2014년이면 내가 어…… 나 태어날 때 우리 아빠 나이랑 비슷하네. 되겠는데? 힘내볼까? 릴리랑.”


  대답하면서 오묘한 미소를 짓던 제임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내 아들이든 손자든 왜 네 이름이 들어가 있지?”

  “그야 네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이름이잖아.”

  “…… 허. 그럼 네 아들 이름에는 제임스가 들어가 있겠네.”

  “내 작명 센스가 네 수준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하드핸즈가 뭐야. 혼즈는 또 뭐고.”


  시리우스가 제 손을 펴보이자 제임스가 낄낄거리면서 대답했다.


  “글쎄, 서프라이즈?”

  “너랑 나 알면 누가 들어도 우린 줄 알겠는데. 그놈의 뿔은, 다음에 확 부러뜨려버린다.”

  “오 안돼, 내 ‘그게’ 부러지면 릴리가 슬퍼할걸.”




* * *




  모두가 기대했던 대로,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각자의 부모들에게 약 4개월간 잊고 있던 소란스러움을 선사했다. 그 날 아침 식사 도중 위층에서 커다란 폭발소리가 들렸을 때 헤르미온느는 엄한 표정으로 유력한 용의자인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와 프레드 위즐리를 돌아보았고, 이어 그 옆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던 조지에게도 눈총을 보냈다. 제임스와 프레드는 자기들끼리 키들거리며 먹던 스푼을 놓고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헤르미온느에게 제지당했다.


  “확산되는 거니?”

  “아뇨.”

  “그럼 마저 먹고 일어서렴.”

  “네~”


  명랑한 합창에 이어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다시 식탁 위를 메꿨고, 그건 무엇보다도 좋은 식욕 촉진제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해리는 그 이후의 즐거운 시간에 어울릴 수가 없었다. 오러국에서 급하게 호출이 도착했던 것이다. 연휴로 비번인 해리에게 보고가 올라올 정도라면 역으로 그 심각성이 짐작이 되어, 해리는 앓는 소리를 한 번 냈을 뿐 순순히 성 뭉고 병원으로 향했다.




  어둠의 마법은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례하는 강력한 효과 덕분에 고대에서부터 전승되어 왔으며, 볼드모트가 몰락한 지금에 와서도 연구가 되고 있음은 물론, 어둠의 마법을 이용한 범죄도 종종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많은 수의 전, 현직 오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어둠의 마법에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근래에 들어서는 없던 일이었다. 성 뭉고 병원으로 후송될 때의 오러들은 하나같이 어둠의 마법, 그 중에서도 특히 금지된 저주에 당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고 있었다. 후송될 때까지는 그랬다는 뜻이다.


  “마치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심각한 부상이었는데 순식간에 아주 오래된 상처처럼 흉터로만 남았어요. 다만 정신적으로 입은 충격은 단순히 시간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후유증이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치료사의 말을 들으며 해리는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그러나 해리가 성 뭉고 병원에서 현재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몇몇을 만나 직접 살피고 경과보고를 듣는 동안에도 비슷한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특히 심각한 상황은 전쟁 당시의 피해로 인해 성 뭉고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있던 환자들에게 생겼다.


  5층 데스크가 갑작스럽게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치료사들이 몇 번이고 교대해가며 환자를 치료하려 애쓰고 있었다. 해리는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거나 발작을 일으킨 환자들 중에서 프랭크 롱바텀이라는 이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지금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어둠의 마법의 피해자들 중에서 서른 다섯살 이하의 젊은이들은 한 명도 없고, 그들은 대부분 볼드모트의 전성기 당시 오러였거나 그 피해자였다.


  “역시 볼드모트와 연관이 있는 걸까요?”

  “그 추종자가 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이 있다고 해도 이제와서 이정도까지 강력한 저주라니 말이 되지 않아.”


  일단 오러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성 뭉고 병원을 나서면서 낮은 목소리로 부관과 대화를 주고받다말고 해리는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네빌을 발견했다. 네빌은 휠체어를 밀고 있었는데, 거의 백발에 가까운 흐트러진 머리를 한 채 휠체어에 앉아있는 부인이 누구인지 해리는 어쩐지 알 것 같았다.


  그 때 고개를 들던 네빌과 눈이 마주쳐, 해리는 부관에게 먼저 사무국으로 돌아가 있으라 하고 네빌 쪽으로 다가갔다. 네빌은 얼마 전 보았을 때보다 한층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는 애써 웃으며 해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해리.”

  “안녕, 네빌. 안녕하세요.”


  다른 적당한 인사를 찾을 수 없어서 해리는 안녕, 하고만 인사하고 앨리스에게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앨리스는 인사를 받은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손안에 쥐고 있는 무언가에게 중얼중얼 말을 건네고 있을 뿐이었다. 네빌은 난처한 듯 웃고는 무난하고도 일상적인 주제를 꺼냈다.


  “제임스는 집에 있지? 잘 있어?”

  “학교에서만큼이나 잘 지내는 것 같아.”


  해리의 대답에 네빌이 실소했다. 입학한 그 날 저녁부터 학교가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들쑤시고 다니는 꼬마 포터에 프레드, 피니간까지 가세한 악동 3인방은 그리핀도르 사감 네빌의 두통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이었다. 다행히 반장인 테드 말은 어느 정도 듣는 것 같았지만, 테드가 졸업한 후를 생각하면 벌써 한숨이 나왔다. 네빌의 한숨에 어쩐지 책임감이 느껴져서 해리는 농담처럼 말했다.


  “걔들 보면 학교다닐 때 나는 그래도 점잖았던 거 같지.”

  “…… 뭐?”


  네빌이 되묻는 투가 너무 어이없어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해리는 그만 실소해 버렸으나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이제 슬슬 오러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네빌에게 인사를 건네려는데, 앨리스가 쥐고 있던 것을 툭 떨어뜨렸다. 네빌이 익숙한 듯 허리를 굽혀 주우려 했으나 동그란 공은 데굴데굴 굴러 해리 발 앞에 멈추었고, 해리는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주워들었다.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손때가 묻어 원래 색을 거의 잃은 작은 공은 낯선 사람의 손이 닿자 작은 날개를 살짝 펼쳤다가 도로 오무렸다. 스니치였다. 정말 오랜만에 잡아보는 스니치여서 해리는 약간 감상에 젖어 앨리스에게 그것을 건넸다.


  “아…….”


  해리가 자기 스니치를 주워주는 것은 인식했는지 앨리스가 떨리는 손을 뻗었다. 해리가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스니치를 올리고 놓치지 않도록 주먹을 쥐어주는데 앨리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해리를 보았다. 좀 전까지의 멍한 눈빛과는 달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제대로 보고 있는 앨리스의 시선에 해리가 약간 의아해하는데 별안간 앨리스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물론 미소는 잠깐이었고 앨리스는 곧 생기잃은 눈빛으로 돌아갔지만, 네빌은 자기가 더 놀라서 멍하니 앨리스를 보고 있었다.


  “네빌?”

  “어? 어, …… 어.”


  네빌의 얼떨떨한 반응에 해리는 좀전에 앨리스가 자신을 보고 미소지었을 때보다 더 의아함을 느꼈으나, 이어지는 네빌의 말에 이유를 알았다.


  “나 엄마가 웃는 거 처음 봤어.”

  “…….”


  어쩐지 숙연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이었기 때문에 해리는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네빌이 미안한 듯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해리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고마워, 해리.”

  “무슨 소리야 그게. 내가 뭘 했다고…….”

  “너 보고 웃으셨잖아. 정말 처음봤어…….”


  한 것도 없는데 감사인사를 받자니 민망해서 해리가 어색하게 웃자 네빌이 앨리스가 두르고 있던 담요를 다시 정돈해주고 휠체어를 잡으며 덧붙여 말했다.


  “너도 봤겠지만 엄마가 계속 가지고 계시는 거 스니치야. 엄마는 학교 다닐 때 그리핀도르 팀 주전 수색꾼이셨대. 너 보고 웃으신 거 방금 전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신 게 아닐까. 너랑 네 아버지랑 많이 닮았다잖아.”


  학창시절 네빌은 퀴디치에 썩 재능을 보였던 적이 없었고 해리는 네빌로부터 자기 어머니가 퀴디치 선수였다는 말을 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앨리스가 자기를 보고 제임스를, 더 나아가 그녀에게 몹시 즐거운 추억이었을 퀴디치 팀을 떠올렸고 그로 인해 네빌이 처음으로 어머니의 미소를 봤다는 것은 해리에게 묘한 감상을 불러 일으켰다. 네빌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어떤 기억을 떠올리며 해리는 반쯤 충동적으로 말했다.


  “또 문병 올게.”

  “푸. 됐어, 바쁘잖아. 그리고 일시적인 거고.”

  “그래도.”


  슬슬 병실로 돌아가려는 네빌과 얼마간 함께 걸으며 해리는 그들의 부모에 대한 얘기를 잠시 나누었다. 친한 사이였던 그들이므로, 제임스와 릴리의 결혼사진에 앨리스와 프랭크가 함께 찍혀있었듯이 앨리스와 프랭크의 결혼사진에도 제임스와 릴리가 찍혀있으리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곱씹자 묘한 감흥이 일어났다. 그러나 감상적인 기분도 잠시, 해리가 네빌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직전 앨리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부자연스러운 몸을 한껏 웅크리고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부들부들 몸을 떠는 것은 마치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정면으로 받은 것과 흡사한 증상이었기 때문에, 네빌은 대경해서 치료사를 불러 급히 앨리스를 안으로 옮겼다. 그것은 이번 사건의 연장임이 틀림없었다. 해리는 잠시간 병동 건물을 보다가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 * *




  “생각보다 멀쩡한데?”


  중환자실에 들어서고 잠시 후에야 제임스는 그렇게 말했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프랭크는 대답이 없었지만 앨리스가 대신 힘없이 픽 웃었고, 시리우스가 그 말을 받았다.


  “금방 벌떡 일어나겠네.”

  “정말 그랬으면.”


  앨리스는 눈짓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했고,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프랭크를 한번 더 보고는 복도로 따라 나왔다. 앨리스도 프랭크도 불사조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졸업하자마자 오러가 되어 마법부에 들어갔는데, 마법부에도 이미 볼드모트에게 복속되거나 감화된 자들이 꽤 많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먹는 자들과 싸우는 동시에 혹시 모를 상부의 위험인물도 경계해야 했다. 바로 지난 밤, 분산해서 잠입하던 오러들은 오히려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역습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오러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프랭크는 그 중에서도 중상을 입은 축이었다.


  “분석 결과는?”

  “불명, 오늘 작전은 그대로.”

  “언제.”

  “오늘 23시.”

  “너도?”

  “응.”


  앨리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오늘 밤 머글 마을을 습격할 것이란 정보의 신빙성 자체에 의심이 드는 상황인데다가 어제 역습의 여파로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정말이라면 방치할 수도 없었다. 앨리스는 어두운 얼굴로 애써 웃어보이며 친구들을 배웅했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말이 없었다. 프랭크나 앨리스처럼 오러국에 소속된 기사단원은 물론, 가까이는 리무스만 해도 오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개인 임무를 맡아서 종종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안전한 곳에 있었다. 애초에 동료들이 위험을 무릅쓰는데 그 뒤에 숨어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눈을 마주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씩 웃었다.




* * *




  오러국은 계속해서 날아드는 종이비행기로 인해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피해자를 마법사, 마녀로만 한정짓지 않고 35년에서 40년 전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당했던 머글까지로 확장하고 나니 이번 사태는 더욱 분명해졌다. 피해자들은 과거에 어둠의 마법에 의해 당했던 것과 똑같은 고통을 이제 와서 다시 느껴야만 했으며 그 후유증도 고스란히 남아 괴로워하고 있었다. 다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짚이는 곳이 없었다. 그 정도로 대규모 저주를 펼칠 만한 세력 자체를 상정하기가 우선 어렵기도 했다.


  “국장님.”

  “…….”

  “국장님?”

  “…… 아, 이런.”


  부관이 부르는 소리에 해리는 마치 눈만 감고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틀째 초긴장상태로 철야를 하고 있으니 잠깐 눈을 감는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부관은 여전히 마법세계의 영웅인 해리의 머리칼에 어느새 내려앉은 희끗한 서리를 보며 입맛이 쓴 기분을 느꼈다.


  “잠깐이라도 집에 다녀오시는 게 어떨까요?”

  “아직 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드리는 말씀이죠. 결과보고 드리기 전에 잠깐 집에서 눈도 붙이시고요.”


  해리는 정신없는 오러국 안을 둘러보았다. 다들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부관의 말마따나 자기가 여기 죽치고 있는다고 분석 결과가 빨리 나오는 건 아니었다. 해리는 부관에게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게 할 것을 지시하고는 일단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흘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25일 정오가 넘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빠!”


  집안으로 들어서니 시계바늘을 보고 미리 기다리고 있었 것처럼 명랑한 목소리가 해리를 반겼다. 곧이어 통통 가벼운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보이지 않는 뭔가가 해리를 팍 껴안았다. 해리는 그제야 겨우 입가에 미소를 띠며 보이지 않는 제임스를 쓰다듬었다. 제임스보다는 아직 걸음이 느린 알버스도 곧 쪼르르 달려와 해리에게 안겼고, 해리는 이제 머리만 동동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제임스와 알버스를 살짝 안아주었다.


  “아빠, 이거! 굉장하지!”


  아무래도 제임스는 아까부터 그 말이 무척 하고 싶었는지, 흥분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자기가 두르고 있던 투명망토를 머리 위까지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해리에게 보여주었다. 알버스가 선망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다. 해리 역시 투명망토를 처음 받았을 때의 기분을 알기 때문에 지금 제임스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어서 오렴 테디. 잘 지냈어?”


  해리의 인사에 테드가 씩 웃었다. 자기도 한번만 써보고 싶다고 쫓아가는 알버스를 약올리듯 투명망토를 쓰고 팔 하나만 내밀어서 따라오라는 것처럼 손짓하는 제임스를 보고 해리는 고개를 젓고는 테드에게 말했다.


  “저걸 제임스에게 줬니?”

  “네.”

  “음, 아직 재밌을텐데.”


  해리는 테드가 호그와트에 입학한 첫 해 투명망토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었다. 물론 테드는 그 선물을 대단히 좋아했으며, 망토의 성능을 십분 활용해서 신나게 학교를 돌아다녔고, 가끔 해리에게 자기가 어떻게 했는지를 편지로 보내기도 했다. 아직 6학년인 테드가 망토를 동생에게 양보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해서 해리는 테드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그리고 테드는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띠었다.


  “저는 이제 그게 없어도 괜찮아요.”


  그 말이 단순히 망토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해리는 한 호흡 늦게 깨달았다. 해리가 눈이 커져서 자신을 보는 앞에서 테드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차례로 코를 돼지코로, 입을 오리 주둥이로, 귀를 코끼리 귀로 바꾸었다가 한꺼번에 원래대로 되돌렸다. 변신 마법사는 선천적으로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것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것은 상당한 연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테드가 해리 앞에서 보여준 것은 변신마법사로서 자신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오 맙소사 테디, 에드워드 리무스 루핀, 정말이지 네가 자랑스럽다!”


  해리는 감격에 겨워서 테드를 보다가 이내 꼭 안아주었고, 테드는 소리없이 웃었다.


  “네 부모님도 정말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도라는 내가 본 최고의 변신마녀였거든. 맥고나걸 교수님은 뭐라셔?”

  “앞으로도 수업 열심히 들으라고 하시던데요.”

  “교수님 답다.”


  6학년이 되면서 테드는 변신술 NEWT 과정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사실 이제 더 들을 필요가 없기는 했다. 변신마법사는 그 자체로 이미 최고의 재능이었고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된 이상 NEWT 최고점 통과는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고나걸이 훌륭하게 재능을 개화시킨 제자를 앞에 두고 기쁨을 숨기면서 근엄하게 수업을 열심히 들으라고 당부하는 모습은 금방 상상이 되어서 해리는 푸하하 소리내서 웃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테드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해리는 한가지 깨달았다. 이제 투명망토가 제임스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호그와트에 새로운 불행이 하나 늘어났다는 뜻이었다. 해리는 문득 제임스가 어렸을 때 일을 하나 떠올렸다. 제임스가 두 살이 막 됐을 무렵, 어떻게 벽장 문을 열었는지 잘 보관하고 있던 투명망토를 제 위로 덮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놓고 차라리 뭘 깬다든가 하는 사고라도 쳤으면 나았을 것을, 그걸 쓴 채로 벽장으로 기어들어가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애가 없어진 줄 알고 정말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이제는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아련한 기억이었다.




  새로운 피해자는 전현직 오러도, 머글도 아니라 아즈카반의 죄수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과거 죽음을 먹던 자로서 아즈카반에 영구 수감된 자들 중 몇몇이 갑자기 상처가 생겼다 순식간에 아물거나 졸도했다가 깨어나는 현상이 있었다고 보고가 연속으로 올라오는 것을 훑으며 해리는 그간 분석실에서 제시되었던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한 가설 중 하나에 대해 개연성을 인정했다.


  과거에 발생했던 사건이 현재에 동기화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이제 다음 문제는 그 매개체가 마법사인지 마법물품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수색실에서 현재 파악되고 있는 어떠한 집단에서도 그와 같은 대규모 저주를 걸었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그 때 해리 앞으로 종이 비행기가 하나 더 날아들었다. 민간 차원의 피해자가 더 발생했다는 보고였다. 제일 첫 줄에 루시우스 말포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해리는 앓는 소리를 냈다.


  크리스마스 연휴는 짧았다.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킹스크로스 역으로 향하면서 제임스는 아침부터 볼이 잔뜩 부어있었다. 해리가 며칠째 집에도 잘 들어오지 못할 만큼 바빴기 때문에 오늘 배웅을 나와주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만큼은 테드가 달래도 별 소용이 없어서, 제임스는 내내 투덜거리면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들어가려 했다. 물론 기둥을 통과하기 직전에 붙잡혀 혼나고 다시 제대로 인사를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시무룩한 입매는 좀처럼 풀릴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 다녀오겠습니다.”

  “편지 쓰렴.”

  “네.”


  건성으로 대답하고 제임스는 기차에 올라탔다. 벌써 세 번째 타는 급행열차였기 때문에 더는 신기할 것도 없다. 테드가 먼저 반장 칸으로 가고 적당한 객실을 찾아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먼저 타고 있던 피니간이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제임스의 입가에 이제야 좀 웃음이 걸렸다. 이어 프레드까지 객실을 찾아왔고, 곧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연휴동안 조지가 프레드에게 쥐어준 시제품을 학교에서 시험해볼 계획을 짜다가 갑자기 제임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맞다!”


  제임스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선반에 얹어놓은 자신의 트렁크를 꺼내 마구 헤집더니 구석에 꽁꽁 접어 넣은 낡은 양피지 뭉치를 꺼냈다. 제임스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뭔가 싶어서 주목하던 프레드, 피니간은 제임스가 자랑스럽게 내미는 낡은 양피지를 한번 보고는 이게 뭐냐는 듯이 제임스의 얼굴을 보았다. 제임스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젬이 드디어 비밀을 알아버렸어!”


  프레드가 폭소를 터뜨리는 가운데 제임스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피니간이 탄성을 터뜨렸고 프레드도 웃음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잉크가 번지듯 낡은 양피지 위에 나타나기 시작한 얼룩들은 차츰 분명하게 호그와트 성의 모습을 그려냈고, 그 위로 ‘The MARAUDER’S MAP’ 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제임스가 중요한 것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양피지를 마저 펼치자 그 안에는 자그마한 발자국들이 종종 돌아다니고 있었다.


  “봐, 교장 선생님이야.”


  제임스가 지팡이로 발자국 하나를 가리키자 그 위에 붙어있던 자그마한 이름이 커졌다. ‘M.Mcgonagall’, 이름을 읽은 셋이 눈을 마주쳤고, 곧 그 얼굴 위로 악동의 미소가 번졌다.




  어젯밤 해리가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제임스는 막 잠에 들랑말랑하던 상태였다. 잠결인 것처럼 아빠와 엄마가 목소리를 낮춰 두런거리며 얘기하는 소리를 듣다가 제임스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았다가 약간 비틀거리며 침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는 어두웠고 그 끝에 있는 해리의 서재에서 방문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제임스가 눈을 깜빡이며 문을 열려고 했을 때, 안에서 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


  이상한 말이었기 때문에 제임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틈으로 서재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해리가 낡은 양피지를 들여다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다. 과거와의 연결고리가 되는 매개가 무엇인지 문제되는 이 시점에서 해리는 그의 아버지들이 만들었던 놀라운 지도를 떠올렸다. 물론 그게 이제 와서 새삼 문제가 될 리는 없었지만, 그저 그들이 생각이 났던 것이었다. 아직 그리움이 뭔지 잘 모르는 제임스에게는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표정으로 패드풋과 프롱스, 무니 외 1이 그들의 후배 악동들에게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지도를 보다가, 해리는 픽 웃고는 지도를 도로 접었다.


  ‘마법의 장난 끝.’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쉬고 지도를 도로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해리는 서재 밖으로 나왔다. 정말로 잠깐 들렀던 것이기 때문에 옷만 조금 챙겨서 바로 돌아가야 했다. 복도에서 제임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을 보고 해리는 좀 놀랐지만 곧 빙긋 웃으면서 안자고 있었냐며 제임스를 쓰다듬었다. 제임스는 눈을 깜빡거렸고, 해리는 제임스를 침실 앞까지 데려다 주고 굿나잇 키스를 해주었다. 제임스는 순순히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가, 해리가 나가는 소리가 나고 잠시 후 다시 벌떡 일어나 서재로 조심스럽게 뛰어갔다. 서랍 안에 곱게 접혀 놓여있는 양피지를 꺼내 좀전에 해리가 말했던 시동어를 말했을 때, 제임스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학교가 가까워짐에 따라 지도에는 조금씩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맥고나걸을 비롯한 교수들 뿐만 아니라 학교에 남아있던 학생들의 이름도 차츰 보이기 시작했고,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던 통로도 좀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제임스는 그 중에서 지난 10월에 자신이 우연히 알아낸 지하도를 찾아냈고, 프레드 역시 태피스트리 뒤에 숨겨져 있던 작은 방이 표시돼 있는 것을 찾아냈다.


  “끝내준다.”

  “대박.”

  “여기 우리 안가본데지?”

  “이거봐, 이거 호그스미드로 연결되는 거 아냐?”

  “우와!”




* * *




  “제임스 포터!”


  막 ‘멋대로 쓸데없는 짓,’ 까지 말하던 매드아이마저 입을 다물 정도로 어마어마한 목소리였다. 제임스는 올 것이 왔다는 듯이 시리우스에게 한쪽 눈을 깜빡여 보였고, 시리우스는 실소했다. 도깨비같은 얼굴을 하고 병실에 강림한 릴리는 제임스의 어깨부터 시작해서 이불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졌을 것이 뻔한 붕대를 확인하고 격한 감정을 억누르는 듯 일단 이를 악물었다.


  “…… 하지 말고 회복해라.”


  매드아이가 그렇게 짤막하게 말을 맺고 사라진 자리를 릴리의 잔소리와 호통이 채웠다.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충분히 반성했다는 얼굴을 하고 킥킥거리고 웃음으로서 릴리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팔이 떨어져나갈 뻔한 것 치고는 지나치게 태평한 얼굴로 제임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멀쩡해.”

  “그걸 말이라고 해?”


  마찬가지로 잘생긴 얼굴이 일부 가려질 만큼 머리에 칭칭 붕대를 감고 있던 시리우스가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그냥 조금 다친 것 뿐이라니까.”

  “맞아. 이정도면 긁힌 거나 다름없지.”

  “응급 처치때문에 치료사가 몇이 붙었었는지 알아?”

  “이런 건 금방 나아, 릴리. 진짜 걱정해야 하는 건 이런 게 아니지.”


  그 말에 릴리는 쏟아내려던 잔소리 대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제임스의 말대로 몸이 다친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러국에 공식적으로 올라간 보고서에 따르면, ‘우연히’ 그 마을에 있던 성명미상의 마법사 2명이 오러와 죽음을 먹는 자들 간의 싸움에 끼는 바람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그 보고서를 작성한 매드아이는 물론 아마 누구도 그 보고서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겠지만, 두 명의 변수가 끼어든 덕분에 어젯밤 일반인의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제임스와 시리우스 뿐만 아니라 앨리스를 비롯한 다수의 오러들의 중상이었다. 릴리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제임스는 씩 웃으면서 멀쩡한 한 손으로 자기 입술을 톡톡 건드리고 말했다.


  “그럼 빨리 나으라고 키스.”

  “…… 뭐 이쁘다고?”


  그러나 실랑이 끝에 결국 키스까지 받아낸 제임스는 낄낄거리면서 시리우스를 돌아보았고 시리우스는 ‘뭐.’ 하는 것처럼 별 감흥없는 표정으로 제임스를 보았으며, 릴리는 ‘패드풋 너도 해줄까?’ 하며 진짜로 가까이 감으로서 제임스와 시리우스 둘다를 식겁하게 만들었다.


  릴리가 돌아가고도 몇 명의 병문안이 있었으나 병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뼈가 제대로 붙기 전까지는 움직일 생각도 말라던 치료사의 엄포가 없더라도 어찌나 꽁꽁 붕대를 감아놓았는지 움직이기도 불편하긴 했다. 그 때 그들은 재미있는 것 하나를 기억해냈다. 지팡이를 까딱여 병실 한켠에 걸어놓은 망토 주머니 사이에서 거울 조각을 꺼내온 그들은 미래로 연결돼있는 거울에 톡톡 신호를 보냈다.




* * *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


  제임스가 배시시 웃으면서 테드 앞에 멈춰 섰다. 테드는 반장이 되고 나서도 어지간히 심하지 않고서는 제임스의 장난을 문제삼은 적이 많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모두의 식탁에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웃음버섯 포자를 잔뜩 뿌려둔 것은 반장으로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뭘 한거야? 솔직히 말해봐.”

  “내가 한 것 같아?”

  “주방에 들어갔지?”


  제임스는 혀를 쏙 내밀며 개구지게 웃었고, 테드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제임스가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입학한지 이제 고작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찾아낼 줄은 몰랐다. 그 때 제임스의 망토 주머니에서 뭔가가 반짝거렸다.


  “그게 뭐야?”

  “음? 어? 이게 뭐지?”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꺼낸 것은 동그란 작은 거울이었다. 제임스가 거울을 가지고 다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테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제야 그게 뭔지 기억해낸 제임스가 아하, 하면서 거울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울 너머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

  “어, 안녕. 어……,”

  [잊어버렸구나?]

  “아냐. 혼즈, 하드핸드.”

  [오, 똑똑한데.]

  “이쯤이야.”

  “혼즈, 하드핸드?”

  [응? 누구?]


  제임스는 지난번 대화를 기억해내고는 씩 웃었다.


  “맞춰봐.”

  “제임스, 혼즈와 하드핸드가 누구야? 그 거울은 뭐고? 그거 어디서 났니?”

  […… 꼬치꼬치. …… 혹시 그쪽 친구는 리무스와 무슨 관계있어?]


  제임스는 물론이고 테드도 갑자기 나온 리무스의 이름에 멈칫했다. 그 반응을 긍정으로 알아들은 혼즈와 하드핸드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이야, 드디어. 잔소리하는 거 보니까 영락없네.]

  [그러게, 딱 닮았네. 하하. 넌 이름이 뭐야?]


  테드는 놀란 눈으로 제임스와 거울을 번갈아 보았고, 제임스는 테드의 반응에 일이 재밌게 됐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꺼내며 친근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의 주인이 과연 누구일지, 혼즈와 하드핸드라는 이름을 곱씹으며 테드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에드워드 리무스 루핀.”

  [에드워드 리무스 루핀. 멋진 이름인데. 너도 아빠를 많이 닮았니?]

  “음,”


  테드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야 해리나 다른 사람들에게 리무스와 도라를 꼭 닮았다고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테드 자신이 직접 그렇다고 느낀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테드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이, 테드 대신 제임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테디 형은 아빠도 닮고 엄마도 닮았댔어. 그래서 변신마법사야, 멋있지?”

  [오.]

  [굉장한데?]


  솔직하게 보내는 감탄에 테드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힐 즈음, 제임스가 문득 고개를 들더니 재빨리 주머니 안으로 거울을 쏙 넣었다.


  “루핀, 안으로 들어가렴. 그리고 포터는 잠시 나를 따라오고.”

  “네 교수님~”


  네빌이 한숨을 가득 더한 목소리로 제임스를 불렀다. 일부러 크고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한 제임스는 테드에게 찡긋 눈짓을 하고는 태연하게 네빌을 따라갔고, 테드는 잠시 더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 * *




  “에드워드 리무스 루핀?”

  “응. 테디 형이라고 불렀지?”


  방금 전의 대화를 곱씹다가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리무스의 아들까지 확인한 것은 솔직하게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수확이었다. 제임스는 낄낄거리며 시리우스에게 말했다.


  “이제 네 아들만 남았다.”

  “흠. 글쎄.”


  그러나 시리우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되물었다.


  “너야 곧 에반스랑 결혼한다고 치고. 리무스 상대는 누구지?”

  “치는 건 뭐야. 글쎄, 우리 친구가 연애한단 얘기는 아직 못들어봤는데.”

  “작은 제임스가 형이라고 부르는 거 보면, 아- 모르겠다. 아무튼 리무스가 아들을 낳는단 말이지.:”

  “결혼은 생각도 안하는 것처럼 굴면서 말이야. 운명같이 운명의 상대를 만나나?”


  웃으며 농담처럼 아무 말이나 던지던 제임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애가 변신마법사면, 엄마가 변신마녀일까?”


  변신마법사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매우 드문 재능이다. 따라서 변신마법사가 태어난다면 그 부모 또는 직계 혈족중에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컸다. 제임스의 말에 짚이는 구석이 있었는지 뭔가 생각하던 시리우스는 잠시 후 ‘어, …… 아냐.’ 하고 고개를 저었다. 시리우스가 묘한 표정인 것을 보면서 제임스는 뭔데 뭔데 하면서 캐물었고, 시리우스는 여전히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변신마녀를 한 명 아는데, 아직 어릴걸. 우리랑 한 열 살 차? 열두 살인가?”

  “누구?”

  “도라.”


  그리고는 시리우스가 사촌인 안드로메다의 딸이라고 설명을 덧붙이자 제임스는 곰곰이 관계와 나이 차를 계산해보다가 이내 폭소를 터뜨렸고 시리우스도 따라서 피식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야, 해리가 리무스 교수된댔잖아. 설마 교수일 때 학생으로 만나고 그런 건 아니겠지.”

  “오, 리무스가 늑대라는 건 익히 알지만 설마.”

  “만약 그렇다면 난 내 친구를 다시 봐야겠어.”


  리무스의 취향을 마음껏 위험한 쪽으로 곡해하며 그들은 한참을 장난스럽게 낄낄거렸다. 어차피 병동에서 남는 것은 시간뿐이다. 그들은 테드를 작은 제임스가 형이라고 부른 것을 토대로 그들의 2세간의 관계를 추론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와 에드워드 리무스 루핀이 각각 제임스와 리무스의 아들인지 손자인지를 두고 별 의미없이 입씨름을 하다가 문득 제임스가 의문을 던졌다.


  “근데 쟤들이 과거, 그러니까 지금 우리 일을 아는 건 별 상관없는 거 아냐? 내가 지금와서 내 열 살 때 일을 알았다고 해서 새삼 변할 것도 없듯이.”

  “네 이불이 밤마다 걷어차일 수는 있겠지.”

  “뭐. 난 언제나 당당해.”


  낄낄거리면서 제임스는 자기가 방금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을 시리우스에게 얘기해 주었다. 시리우스도 재밌겠다며 동의하고 세부 내용을 정하고 있는데, 리무스가 병실로 들어왔다.


  “오, 무니!”

  “어서와!”


  필요 이상으로 열렬한 환호에 리무스는 친구들이 생각만큼 중태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함과 동시에 어딘지 수상쩍은 기운을 느끼고 문가에서 더 들어오지 않고 멈춰 섰다. 그러나 리무스의 경계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키득거리며 리무스를 손짓해 불렀다.


  “무슨 음모야?”

  “오 친구, 음모라니 서운하네, 우리 늑대씨.”

  “그래 늑대씨. 이리 와봐.”


  유난히 특정한 단어를 강조하는 말에 여전히 수상쩍어하면서 다가온 리무스를 사이에 두고 둘은 재미난 음모라도 꾸미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서 지금까지 있던 일의 일부를 설명했다.


  “전에 우리가 거울 안된다고 그랬잖아. 근데 그게 링크가 깨진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연결됐더라고. 어디게?”

  “결론만 말해.”

  “해리가 있는 곳. 그러니까 3…… 몇년 후지?”

  “36년 후, 크리스마스.”

  “무슨…….”


  그러나 곧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리무스는 새삼스럽게 그들이 꺼내두고 있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있었지만 저 거울의 반대편에 36년 후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리무스도 그 거울이 대단한 물건이라는 건 알았지만 시간을 넘어서도 연결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미래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마냥 즐거워할 게 아니라, 상당히 위험한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리무스가 거울에서 시선을 들어 그들을 번갈아 보자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리무스가 뭐라 하기 전에 선수쳐서 말했다.


  “알아, 시간 어쩌고 금기 어쩌고.”

  “…….”


  막 말하려던 내용을 뺏기는 바람에 리무스는 벌렸던 입을 하릴없이 다물었다. 제임스는 만족스럽게 씩 웃었다.


  “어차피 지금 해리가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우리가 재밌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야.”

  “아 그래, 너도 해라. 아니지 너도 해야지.”

  “뭘?”

  “어 그럼 일단 얘 이름부터? 뭘로 하지. Moony를 어떻게, H로 시작하게, 음, Honey?”

  “푸흡.”

  “그러니까 뭔데?”


  제임스의 어거지 작명에 시리우스가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리무스가 원한 대답은 잠시 후에나 돌아왔다. 배우자가 될 마녀가 선천적 변신능력자이고 그 유력한 후보가 그들보다 열 몇살 어리다는 것은 미리 알려주면 재미가 없어질 얘기였기 때문에 그 부분은 쏙 빼고, 대신 그들은 마치 단순한 가정인 것처럼 설명했다. ‘만약 아들이 생긴다면,’ 하는 주제에 리무스는 잘 상상이 가지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옆에서 강권하는 친구들에게 휘말려 결국 동참하고야 말았다. 제임스는 내친 김에 릴리까지 불러냈다. 미래에 우리에게 아들이 생긴다고 가정해보라는 말에 릴리는 눈을 깜빡거리다 진지하게 대답했다.


  “난 딸이 좋은데.”

  “그럼 딸도 낳으면 되지. 딸 이름에 릴리도 좋겠다. 아무튼.”


  릴리는 아무래도 어색한 듯 머뭇거렸으나 막상 시작하자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입을 열어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이 가까스로 웃음을 참게 만들었다. 릴리보다 더 어색해하던 리무스까지 재촉해서 결국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생각했던 것을 완성했고, 그걸 도로 리무스에게 턱하니 맡겼다.


  “이걸 리키콜드런에 맡기는 거야. 그리고 나중에 한 30년 40년쯤 지난 다음에 찾는 거지.”

  “리키 콜드런…… 제대로 남아 있을까? 기왕 맡기는 거면 그린고트가 더 확실하지 않아?”

  “에이, 그렇게 확실하면 재미없지. 제대로 전해지는지 여부가 재밌는 건데.”

  “아깝다, 학교에 있었으면 그 잡동사니 방에 숨겨두면 되는데.”

  “앗 그게 더 좋은데. 학교 갈까?”

  “거기까지.”


  더 얘기하게 뒀다간 정말로 호그스미드에서 거꾸로 학교로 침투할 기세인 두 사람을 릴리가 적시에 말리는 사이, 리무스는 둘이 맡긴 작은 꾸러미를 들여다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자기에게까지 미래의 아들에 대해서 가정해보라고 말했던 건 해리에 대해 모르고 어색해할 것이 틀림없는 릴리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 * *




  의문의 대량 상해사건이 잠시 소강되나 싶더니 또다시 발생했다. 한 번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다시 피해자가 되지 말라는 규칙은 없어서, 심한 사람은 벌써 세 번째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오러국에서도 손놓고 있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경위에 대해서는 거의 확정하고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과거의 사건을 지금 재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그리고 불운한 사고로 과거 전쟁 당시의 시간과 현재가 연결되어 어둠의 마법이 동기화되고 있다. 사건의 현재 규모가 크더라도 원래 개미구멍 하나로도 둑은 무너질 수 있듯이 시발점은 작을 수 있는 법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 개미구멍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획책한 경우보다 훨씬 더 수색 범위가 넓어지는 일이었다. 결국 오러국은 현재 상황에 대해 공고를 내, 짚이는 구석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공개적으로 제보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공고를 낸 지 두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제인 카터가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머글 문화유산 오용 및 단속 관리부 사무실에서 오러국 사무실로 달려왔다.


  “포터 국장님!”

  “아, 그러니까 분명-”

  “머글 문화유산 오용 및 단속 관리부의 제인 카터입니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포터 국장님, 제가 드렸던 거! 보셨어요?”


  그게 뭔지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아 해리가 잠시 생각하듯 눈을 깜빡이자 제인은 답답한 듯 가슴을 치고는 외쳤다.


  “거울이요! 그거! 제가 드렸던! 환부서에 다 적어드렸는데 못보셨어요?”

  “아, 거울이요.”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 전에 그런 것을 받았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답하면서 해리는 자기가 그걸 어디다 뒀는지 기억해내기 위해 분주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 반응에서 해리가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제인은 당황한 듯 울상을 지었다가 해리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춰 빠르게 말했다.


  “그거, 과거랑 연결된 거울이었어요.”

  “……?!?”


  지금까지 가장 애타게 찾고 있던 제보였다. 사건을 해결할 방법을 마침내 찾았다는 안도감과 그게 지금껏 자기 옆에 있었는데도 몰랐다는 경악이 더해져 해리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해리가 놀랄 일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확히 1978년 시점, 그리고 그 너머에 계신 건 패드풋과 프롱스에요.”

  “……!”


  해리는 이번에는 정말로 놀랐다. 이제 더이상 부를 대상이 없는 이름들이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울 너머에 있다는 것은 해리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해리는 시리우스의 나눠진 양면 거울을 두 쪽 다 가지고 있고 그것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리는 전쟁이 끝난 이후 한 번도 거울을 쓴 적이 없었다. 가장 사용했어야만 했을 때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거울 너머에 패드풋 뿐만 아니라 프롱스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해리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것은 공식적으로는 당장이라도 파기되어야만 하는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포터 국장님?”

  “…… 그, ……고맙…… 습니다. 제보.”


  해리는 떨리는 입술로 애써 대답하고 그 거울의 행방에 대해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퇴근하는 길에 받았기 때문에 분명히 집으로 가져갔다.




  “제임스.”

  “어, 테디 형.”


  1학년들이 모여서 와글와글하는 가운데 테드가 들어오자 다른 친구들이 입을 다무는 와중에도 제임스가 반색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테드는 제임스를 따로 밖으로 불러내서 조용히 물었다.


  “그거 나도 얘기해볼 수 있을까?”

  “뭐?”

  “그 거울말이야. 하드핸드와 혼즈.”

  “아 그거! -를 내가 어디다 뒀더라?”


  그 날 주머니에 넣고 옷을 벗어두었으니 집요정이 세탁한다고 가져갔더라도 주머니 안의 물건은 꺼내두었을 것이다. 제임스는 테드와 함께 제 방으로 올라갔다.




  제인은 즉각 사무실로 돌아가 환부서를 다시 보냈다. 프롱스와 패드풋으로 본인을 확인했다는 항목을 읽으며 해리는 그걸 코트 주머니에 넣었던 것을 확실하게 기억해냈다. 물론 이제 와서 새삼 주머니를 뒤져봐야 나올 리는 없으므로 해리는 우선 집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부관에게 제인의 환부서를 토대로 그 거울을 머글에게 판 수상한 마법사의 행적을 추적하도록 지시하고 오러국 사무실을 나오면서 해리는 복잡한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개미구멍’을 만들어낸 것이 그 마법사의 고의인지 아니면 우연한 실수인지가 우선 문제될 것이고, 거울을 파기하는 것으로 이번 일의 원인이 완전히 제거될 것인지, 그 후유증도 사라질 것인지가 두 번째 문제이며, 그 과정에 프롱스와 패드풋의 의지가 혹시라도 개입이 되었는지가 세 번째 문제였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 아래에 좀더 사적이고 감정적인, 그리움이라는 문제가 깔려 있었다.


  집으로 순간이동한 해리는 바로 서재로 들어가 자신이 중요한 물건들을 모아두는 서랍과 잡동사니를 담아두는 바구니를 모두 뒤졌다. 언뜻 눈에는 보이지 않아 아씨오 주문까지 썼음에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여기에 둔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 미간을 좁힌 채 방금 뒤적이느라 이것저것 꺼내놓은 책상 위를 괜히 노려보던 해리는 문득 뭔가 있어야 하는 것이 또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밀지도가 없었다. 좀전에 물건을 모두 꺼내 텅 빈 서랍을 다시 열어보다가 해리는, 겉으로는 그저 낡은 양피지처럼 보이는 그 비밀지도를 재밌다고 생각할 만한 개구쟁이가 이 집에 한 명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이마를 짚었다.


  “……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


  해리가 가장 최근에 비밀지도를 꺼냈던 밤에 서재에 찾아왔던 제임스를 제 방에 데려다주었던 것을 기억해낸 해리는 제임스가 지도를 가져갔을 것이라고 확신에 찬 추측을 하며 헛웃음을 웃었다. 생각같아서는 좀더 자기 힘으로 학교를 탐험하고 돌아다니게 두었다가 1~2년 후에나 주고자 했었다. 제임스라면 자기 힘으로 찾아내는 것 또한 재미있어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지도를 손에 넣은 이상 제임스와 그 친구들이라면 그걸 활용하는 또다른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지도 모른다. 게다가 테드가 투명망토까지 물려줬으니, 어쩌면 진심으로 호그와트의 안전을 기원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내 이번 일 처리 때문에 지끈지끈하던 머리에 색다른 걱정이 더해졌으나 이게 기분전환이라도 됐는지 오히려 마음이 좀더 느긋해졌다.


  그러고 보면 일이 터지는 바람에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별로 같이 지내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이틀 정도, 그나마도 급하게 출근하느라 하루를 온전히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새삼스럽게 집안이 무척 적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야 당연히 학교에 있을 거고, 알과 릴리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 제임스라든가 다른 아이들이 ‘아빠!’ 하고 반겨주는 게 얼마나 뿌듯한 기분인지 새삼 떠올리던 해리는 문득 뭔가를 기억해냈다.


  “…….”


  그러니까, 연휴 첫 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길에 제인에게 거울을 받았고 그걸 그대로 주머니에 넣은 채 집에 돌아왔을 때 제임스가 해리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분명 거울을 서재 책상위에 놓아달라고 제임스에게 맡겼었다. 해리는 그 때 그것을 그저 평범한 거울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임스라면 그 잠깐 사이에 뭔가 특이한 점을 발견하고 흥미를 가졌을 지도 몰랐다. 이미 프롱스와 패드풋이 머글이나 제인과 얘기를 나눴던 것처럼, 제임스와 대화를 나눴다면? 제임스가 지금 이 시대의 이것저것에 관하여 과거의 현재를 살고 있는 프롱스와 패드풋에게 뭔가 말했다면?


  “학교, 학교에…….”


  갑자기 초조해져서 해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바로 지팡이를 쥐었다. 학기중 호그와트에는 아무리 이사진이거나 혹은 마법부 소속이라 해도 허가 없이 함부로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었다. 이번 사건의 수사 때문이라는 이유로 정식으로 협조요청을 했을 때의 걸리는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다가, 해리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 그대로 호그스미드로 순간이동했다. 때로는 선 조치 후 절차를 취해야 할 긴급한 사안도 있는 법이다.




  테드는 제임스에게 받은 거울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제임스의 말에 따르면 ‘혼즈’와 ‘하드핸드’와 얘기하기 위해서는 지팡이로 거울을 톡톡 두드리면 빛이 나면서 연결된다고 했다. 단 매번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저쪽에서 대답을 할 때도 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하다 말고 제임스는 키득거리고 웃었다. 그들이 가르쳐 준 몇 가지 중에서 미네르바 맥고나걸 앞에서 시치미를 떼는 방법은 이미 유용하게 써먹었기 때문이다. 말하는 걸 보면 제임스는 혼즈와 하드핸드가 프롱스와 패드풋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


  심호흡을 한 테드가 지팡이를 들어 거울을 톡톡 두드리자 잠시 후 제임스가 말한 대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목소리에도 해리는 그렇게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곧이어 투명망토의 후드를 홱 벗고 모습을 드러낸 제임스가 팔짝거리고 뛰어와서 해리에게 폭 안겼다. 해리는 제임스가 한 손에 들고 있는 빗자루가 자신이 테드에게 사주었던 것임을 알아보았다. 퀴디치 팀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비행에 있어서는 리무스보다 도라를 닮았는지 테드는 빗자루를 곧잘 탔다.


  “젬.”

  “와, 지도에서 아빠 이름 보고 깜짝 놀라서 날아왔,”


  말하다 말고 급히 입을 다문 제임스는 이내 배시시 웃었다. 자기가 해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지도를 가져왔다는 것에 대한 자각은 있는 모양이다. 제임스를 불러내려면 패트로누스라도 보내야 하나 생각하던 해리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기는 했지만, 해리는 짐짓 엄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빠 서재에서 몰래 가져갔지?”

  “헤헤. 근데 아빠 학교에 갑자기 왜?”


  똘똘하다고는 해도 11살짜리 꼬마의 말돌리기란 빤히 그 수작이 보이는 것이었지만, 해리는 제임스의 볼을 한번 죽 잡아당겨 늘이고는 지도보다 지금 더 급한 거울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해리에게 허락 받지 않고 가져오기로는 거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제임스는 ‘어,’ 하면서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시 배시시 웃고는 테드에게 빌려주고 대신 빗자루를 빌렸다고 사실대로 고백했다. 어쩐지, 아무리 제임스라고 해도 잘 빌려주지 않을 만큼 아끼던 빗자루를 빌려줬더라니 테드가 먼저 거울을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조건을 걸었던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했다면 제임스는 몰라도 테드는 거울 너머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눈치챘을 개연성이 높았다. 테드는 제임스의 경우와는 달랐다. 테드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경우 느끼게 될 감정에 대해서 해리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해리는 서둘러 제임스에게 물었다.


  “테디는 지금 어디 있니?”


  제임스는 자랑스럽게 씩 웃으면서 품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낯선 이름들이 차례로 떴다 사라지는 와중에 해리는 기숙사 방에서 혼자 있는 테드의 이름을 금방 찾아냈다. 해리는 어쩐지 멋쩍은 기분을 느끼며 제임스에게 말했다.


  “아빠한테 망토 좀 빌려줄래?”

  “오!?”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확 받았는지 제임스는 바로 망토를 벗어 해리에게 건네주었다. 휘두르는 나무에서부터 그리핀도르 기숙사까지, 직접 다녔던 건 십년도 더 전의 일이었지만 해리는 앞에서 통통거리는 걸음걸이로 뛰듯이 걷고 있는 제임스가 없더라도 눈을 감고도 목적한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초상화 앞에서 제임스가 당당하게 암호를 외치고 안으로 먼저 들어가자, 휴게실에서 노닥거리던 그리핀도르 몇 명이 제임스를 쳐다보거나 인사를 보냈다. 해리는 새삼 망토자락을 여미고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테디 형!”


  노크를 하는 둥 마는 둥 몇 번 두드리고 제임스가 문을 벌컥 열었고, 해리는 서둘러 그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침입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 테드는 뛰어들어온 것이 제임스임을 알고는 얼른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러 닦았으나, 제임스도 해리도 이미 다 본 후였다.


  “형 울었어?”

  “아, …… 제임스, 나가서 논다더니.”

  “근데 아빠가 와서. 아빠.”


  테드는 좀 전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해리는 문이 단단히 잠긴 것을 확인하고는 투명망토를 벗어서 제임스에게 건넸다. 제임스가 해사하게 웃으면서 다시 망토를 몸에 둘러 머리만 동동 떠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방안을 걸어다니는 동안, 해리는 테드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토닥여줬다.


  “어, 어떻게 학교에 오셨어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 그보다 지금 그 거울로 얘기하고 있었니?”

  “네? 아, 네. 해리, 저,”

  “그 너머의 사람들이 누군지 아니?”


  해리가 몹시 진지하게 묻고 있었기 때문에 테드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덧붙여 속삭였다.


  “제임스는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요.”

  “…… 네가 누군지 그 분들도 알고?”

  “네. 아, 저도 알아요. 지금 일어나는 일들 신문에서 봤거든요. 해리가 직접 학교까지 온 걸 보면 역시 저거랑 관계있는 게 맞죠? 바로 알려드려야 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런데…….”


  해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테드를 토닥여 주었다. 한번만이라도 대화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그 마음을 어떻게 모를까. 그러나 해리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그들과 대화를 하게 된다면 자기 손으로 거울을 파기하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갑자기 말이 없어, 테드? 옆에 누구 왔어?]


  그러나 연이어 들리는 쾌활한 목소리에 해리는 눈을 잠깐 감았다 떠야만 했다.


  [그 꼬마 제임스인가? 아니면?]

  [너 일부러 그렇게 부르는 거지?]

  [당연하지.]

  [뭐래. 테드 봤으면 이제 나올 사람 뻔하지 않아? 네 아드…… 혈연?]


  해리는 자기가 그들의 목소리며 말투, 웃음소리를 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듣는 생생함은 기억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왈칵 치솟는 그리움을 삼키며 해리는 거울로 한발짝 다가갔다.


  [어디, 그래서 새로 등장한 친구 정체는? 정말로 얘 아들?]

  [얘라고 말하면 알겠냐.]

  [테드는 알았잖아?]

  [그래서 테드? 제임스? 아니면 누구?]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더불어 태연하게 잡담을 주고받는 그들의 목소리가 몹시 반가웠다. 오러로서 어떠한 이유로 인해 당신이 체포되고 이러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며 당신은 이러한 대응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 절차적 정의다. 그러므로 파기하더라도 파기하는 이유는 알려주어야 한다. -라는 이유로, 잠깐의 고민을 더한 끝에 결국 해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해리예요.”

  [해리? 정말?]

  [해리라고?]


  거울 너머에서 한층 부산해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란스러움이 자기에 대한 반가움의 표시처럼 느껴져서 해리는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테드와 제임스를 한 번 씩 보고는 거울에 대고 물었다.


  “테드와 많이 얘기했어요?”

  [그렇게 많이는 못했어. 주로 이쪽의- 아 이젠 말해도 되나? 리무스 얘기를 해줬지. 좋아하던데.]

  [그리고 잔소리는 리무스랑 릴리가 벌써 다 했으니까 안듣는다. 이거 왜 그런지 우리도 모르거든.]


  다행히 걱정 중 하나가 사라져서 해리는 약간 안도했다. 만약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의도적으로 거울을 연결시켰더라면 그건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해리, 잘 지냈어?]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오는 평범한 인사 하나가 뭉클하게 반가웠다. 해리는 테드와 제임스를 돌아보고는 테드에게 눈짓을 했다. 그게 잠깐 나가달라는 뜻임을 짐작하고 테드는 불만스럽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해리가 몇 번이나 더 눈짓으로 제임스를 가리키며 간절하게 쳐다본 끝에 겨우 그들을 나가게 할 수 있었다.


  “저야 잘 지냈죠. 그 쪽은 어때요? 한창 위험한 시기잖아요.”


  [하, 해리, 너 지금 누구에게 묻는 거야? 당연히 멀쩡하지.]

  [무슨 당연한 소리를.]


  예상했던 대로 자신만만한 대답들이었다. 하긴 시리우스는 죽는 것에 대해서 잠드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했고 제임스도 그와 별로 다를 것 같지는 않으니, 위험하더라도 정말 위험하다고 말할 리가 없기는 했다. 묻고 듣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동시다발적으로 생각났다. 그러나 해리가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연락용 수정구에서 긴급을 알리는 불빛이 깜빡깜빡하지 않았더라도, 해리는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말보다 먼저 해야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비밀로 했던 미래의 일 같은 걸 이제 와서 묻거나 하지 않았으니 안심해. 그리고 벌써 하나 확실한 것도 있지.]

  “…… 뭔데요?”

  [네 엄마는 릴리 에반스야. 곧 릴리 포터가 될. 그렇지?]

  [글쎄, 과연. 그런 건 식장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르잖아? 윽.]


  옆에서 자연스럽게 놀리던 시리우스가 제임스에게 옆구리를 찔리기라도 했는지 숨막히는 소리를 냈다. 해리는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동조했다.


  “그러네요. 그런 건 식장 들어가봐야 알죠.”

  [허, 아들, 태어나기 싫은가 보다?]


  시리우스가 그거 보라며 웃었고 툴툴거리던 제임스도 피식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려서 해리도 그만 따라서 웃어버렸다.


  [꼬마 제임스한테 네 얘기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참았지. 걔가 우리 얘기 안하든?]

  “아, 그게…… 못들었네요. …… 요즘 너무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없었어요.”

  [저런.]

  [정말?]


  그동안 거의 오러국에서 철야할 정도로 바쁘기도 했고 제임스 주니어가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바로 학교로 돌아가서 객관적으로 대화할 시간이 없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려니 마치 변명하는 것 같아서 해리는 약간 얼굴을 붉혔다.


  [아깝다. 네가 우리 가명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일 지 궁금했거든.]

  [걔, 리무스 아들? 걔는 한 번 듣고 알았다더라고. 역시.]

  “가명이요? 아, 이런.”


  수정구에서 깜빡이던 불빛이 붉은 색이 되더니 급기야 강제로 목소리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성 뭉고 병원, 상황 재발.’ 이쪽에서야 말로 ‘제발’ 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해리의 한숨소리가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저 쪽에서 먼저 물어왔다.


  [무슨 일 있어, 해리?]

  [뭐 곤란해 보이는데.]

  “아…….”


  절차 정의니 뭐니 해도 결국 대화를 한 것은 개인적인 소망의 발로였다. 이제부터 정말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해리가 잠깐 입을 다문 사이, 거울 너머에서 킥킥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 이런 분위기 알 것 같다.]

  [나도.]


  그러더니 제임스가 대번에 물어왔다.


  [우리가 뭔가 했지?]


  완전히 맞지는 않아도 그들과 관계된 일이긴 했다. 그들이 먼저 말문을 열어준 덕분에 해리는 숨을 한번 들이쉬고 현재 상황을 알려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울이 과거와 연결되어, 과거 금지된 저주로 인해 고통받았던 생존자들이 그 당시의 고통을 그대로 받고 있으며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계속 연락이 오고 있으므로 그 매개체가 되고 있는 거울을 파기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시리우스가 반문했다.


  [확실해?]


  아까 낄낄거리던 것과는 달리 시리우스의 목소리는 꽤나 진지해져 있었다. 해리의 시간대의 사람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원인에 대하여 그들에게도 짚이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얼마 전 프랭크가 습격당했던 일이라든가, 앨리스를 비롯한 다른 오러들이 중상을 입었던 일을 떠올리며 제임스를 보았다. 제임스도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그 이상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아까 자신들이 멀쩡하다고 말했던 게 사실과 다르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어쩔 수 없지. 고민하지 마 해리.]

  [그래. 파기해야 한다고 판단한 거지? 그럼 해. 네가 해야겠다고 결정한 걸 믿어.]


  생각보다 너무 쉽게 수락하는 게 놀랍기도 했고 무의식중에 조금 서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 시리우스도 제임스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쉽게 하는 말일 터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에 그 조금의 서운함도 스르르 풀렸다.


  [그래도 아쉽네. 모처럼인데. 안 그래도 그 때 거울 너에게 줄 걸 그랬다 막 그런 생각 했었는데.]

  [나중에도 안주나? 해리 태어나더라도 이런 식으로 얘기하려면, 음. 그럼 몇 년이야.]

  [어, 한 1년쯤 있으면 되려나?]

  [뭐라는 거야. 애가 말은 해야 할 거 아냐.]

  [해리라면 태어나자마자 아빠 안녕! 할 거야. 그치, 해리?]


  결국 해리가 소리내서 웃자 그들도 만족한 듯 따라서 웃었다. 웃고 있으면서도 해리는 괜히 눈시울이 시큰했다. 지금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처해있는 전쟁이 얼마나 힘든지는 비단 지금 드러나는 피해자들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해리 자신이 겪은 전쟁으로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농담을 건넬 여유도, 웃음도 잃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기뻤다. 해리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럼, …… 할게요. 정말, 정말 반가웠어요. 제임스, 시리우스. 리무스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 엄마한테도요.”


  잠깐 망설이다 덧붙인 마지막 말에 제임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문득 생각난 것처럼 물어왔다.


  [아 맞다. 시리우스랑은 잘 지내?]

  [나랑? 뭐야, 갑자기.]


  제임스 기준으로도 몇 년 전의 일이었을 텐데 그걸 또 기억하고 있다. 기억해 줬다는 게 새삼 기쁘고 또 뭉클해서 해리는 결국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 그럼요. 늘 그랬듯이요.”

  [역시. 내 말이 맞지?]

  [뭐냐고. 해리, 나 갑자기 왜?]


  시리우스가 답답해하거나 말거나 제임스는 만족스럽게 낄낄거리면서 ‘그럼 해리, 잘 지내!’ 하고 먼저 인사했다. 시리우스도 투덜대다 말고 인사를 건넸다. 해리는 눈을 꽉 감았다 뜨고 지팡이를 흔들었다.




  거울 팬던트 주변에 파르스름하게 빛나던 둥근 막이 어렸다가 곧 사라지자, 그것은 그저 평범한 거울처럼 천장을 비출 뿐이었다. 이제 마법부에 가져가서 분석팀에 넘겨 확실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차후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해리는 휴대용 수정구를 꺼내 부관에게 연결했다.


  “현재 상황은 어때? 병원과 수색 둘 다.”

  [국장님! 제가 얼마나, 아니, 병원 쪽은 지금 연락해 보겠습니다. 수색 쪽은 현재 두 명을 물망에 올리고 각각 추적하는 중입니다. 상세 보고할까요?]

  “아니, 바로 진행해.”

  [네. 병원에서 보고 올라왔습니다. 크루시아투스 진행형의 경우 발작이 순간적으로 멎었다고 합니다. 국장님, 혹시 뭔가 처리하셨습니까?]

  “후유증은?”

  [그에 관해서 별다른 언급은 없습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곧 복귀할테니 직접 듣지.”


  해리는 가늘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끝날 일을 그렇게 오랫동안 짐작도 못하고 있던 데 대한 자책이 그를 휘감았다. 진작 거울에 신경쓰고 환부서를 읽었더라면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 더 침착하게 그들을 만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제야 사무치는 그리움에 해리가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곧 해리는 자기보다 더 속상하고 아쉬워할 그의 대자를 떠올리고 어렵게 표정을 수습했다.


  해리가 방문을 열자마자 제임스가 다다다 뛰어들어와 거울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볼을 부풀리고는 해리를 보았다. 밖에서 일이 이렇게 될 줄 짐작하고 있었는지 테드는 그저 굳은 표정으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리가 미안함에 테드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그래야 하는 일이었잖아요. 그, 연결돼서, 그러니까 끊어야…… 알아요. 괜찮아요.”


  머리색이 깊은 푸른 빛으로 변한 채 억지로라도 웃어보이려던 테드는 결국 실패하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표정에 언뜻 스쳐간 체념이 못내 가슴아파 해리는 거듭 사과했다. 해리가 그렇게 나오자 테드는 오히려 이제 괜찮다고, 마법부로 돌아가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해리를 재촉했다. 해리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교장실로 향했다. 맥고나걸에게 대강의 상황 설명을 하고 순간이동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맥고나걸은 최근 사태의 시발점이 된 물건이 학교에 있었다는 것에 매우 놀랐으나, 그걸 해리의 집에서 제임스가 집어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덜 놀라는 기색이었다. 다만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마법부로 돌아와서 해리는 거울에 행운의 마법을 걸어 머글에게 팔았다는 마법사의 인적사항을 보고받으며 거울을 분석팀에 넘겼다. 머글에게 멋대로 마법 물품을 판매한 죄목으로 긴급체포된 그는 자신이 건 마법의 정체가 펠릭스 펠리시스같은 행운의 마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지팡이에서 검출된 마법은 기존의 마법과는 전혀 다른 엉터리 마법들 뿐이었고, 결국 그는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다 후원이 끊기고 연구비 뿐만 아니라 생활비조차도 떨어져서 푼돈이라도 벌어보려고 그랬다고 자백했다. 또한 거울의 출처에 대해서는 어디서 샀는지 잘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 결국 집에서 굴러다니던 잡동사니 몇 개에 엉터리 마법을 걸어 머글에게 판 죄목 외에 이번 사태에 관련해서는 과실책임만을 물을 수 있을 뿐이었기에 일부 오러들은 분통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거울의 유통경로에 대해 추가적으로 수색을 지시하고 병원에 들러 직접 상황을 살피고서야 해리는 일이 거의 해결되었다고 느꼈다.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라 해리는 벤치에 주저앉은 채 눈을 감았다. 딱 한마디만 더 할 수 있었으면, 더 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자기가 아니더라도, 테드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정말로 미안했다.




  제임스는 테드 옆에서 안절부절못했다. 테드의 말을 이번만큼 믿기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괜찮다고 말할 기운도 없는지 테드는 그저 기대듯 의자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제임스가 곧 결심한 듯 눈을 빛냈을 때였다.


  “젬.”

  “어, 응?”

  “넌 얘기해봤어? 그러니까, ‘무니’랑.”

  “…… 아니.”

  “그렇구나.”


  제임스 역시 프롱스, 패드풋과만 이야기했을 뿐 무니와는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그 전에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예 무니에 관해서는 생각도 못했다. 제임스의 대답을 들은 테드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금방…… 오실 거라고 했는데 …… 근데 그거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치.”

  “테디 형, 형 순간이동 할 수 있지.”


  뜬금없는 말에 테드는 제임스를 돌아보았다. 평소 본 적 없는 기운 없는 표정에 제임스는 일부러 더 밝은 표정으로 테드에게 다가가서 비밀스럽게 말했다.


  “형이 몰래 연습한 거 다 알아. 다이애건 앨리로 순간이동 할 수 있어?”

  “음, 젬. 내가 지금 좀…….”

  “내 말 들어봐. 프롱스가 알려준 게 있단 말이야.”


  그제야 테드가 약간 흥미를 보여 제임스는 씩 웃고는 품에서 지도를 짠 꺼내보였다. 지도 위에서 펼쳐지는 마법에 테드가 놀란 눈으로 제임스를 보았고, 제임스는 의기양양하게 지도를 펼쳐 지팡이로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로 가면 호그스미드로 바로 연결돼.”

  “호그스미드? 젬, 설마 너 가봤니?”

  “으음, 두 번?”

  “맙소사,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제임스를 보고 테드는 신음을 뱉었다. 그러나 제임스는 손짓을 해서 다시 테드의 주의를 끌고는 자기 계획을 더 설명했다.


  “그래서 내 말은, 형이 여기로 나가서 다이애건 앨리로 순간이동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리키콜드런에 가서 물어보는 거지. 혼즈와 하드핸드가 맡긴 물건을 달라고!”

  “맡긴 물건? 뭔데?”

  “나도 몰라. 아직 있을지 여부도 확실히 모른댔어. 하지만 가보는 게 더 좋잖아. 그치?”


  테드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쩌면 아직 끈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테드는 아까 자기 앞에서 해리가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던 것을 떠올렸다. 대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호그와트 학생이 호그스미드도 아닌 다이애건 앨리에서 발견된다면 반성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해리에게 바로 연락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을 찾아서 해리에게 가져다주면 되는 것 아닐까? 테드와 눈이 마주치자 제임스가 씩 웃었다.




* * *




  리무스는 후드를 눌러쓴 채 리키 콜드런의 낡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서 느릿하게 술잔을 닦고 있던 톰 영감은 리무스가 주문을 하기 전에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을 것처럼 한결같은 동작으로 다음 술잔을 집어들었다.


  “파이어 위스키 한 병, 그리고 물건을 맡기려고 합니다.”

  “여기서 파는 건 술과 안주뿐이야.”


  톰이 약간 새는 발음으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음에도 리무스는 가지고 있던 손바닥만한 주머니를 카운터 위에 올리고 말했다.


  “혼즈와 하드핸드를 찾는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런 건 그린고트에나,”


  그린고트에서나 볼 법한 갈레온이 가득 담긴 주머니 안쪽을 본 톰 영감이 새삼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리무스는 갈레온이 든 주머니를 닫고는 은밀한 물건을 맡기는 것처럼 비밀스러운 손동작으로 맡기려는 다른 주머니를 들어보였다.


  “그게 뭔데?”


  톰이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물어왔다. 리무스는 픽 웃으며 말했다.


  “이벤트를 좋아하는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할, 일종의 러브레터죠.”

  “엥? 그런 걸 왜 이런 데다 맡겨, 그것도- 그렇게.”


  톰이 다시 갈레온이 든 주머니를 흘끔 보았다. 리무스는 두 주머니 다 톰에게 건넸고, 톰은 무게를 가늠하듯 손을 약간 움직여보고는 은밀하게 물었다.


  “둘 다 맡기는 건가?”

  “네. 찾으러 오는 건 꽤 뒤가 될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무거운 주머니의 것은 합당한 만큼 가지셔도 좋습니다. 보관에 대한 감사의 뜻이라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흠.”


  톰이 주머니를 카운터 아래에 쓱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라고?”

  “혼즈와 하드핸드요.”

  “이름만으로 확인하면 되나?”


  리무스는 가만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친구들이 물건을 찾으러 온다면 여러 가지 의미로 인상적일 터였다.


  “아마 눈에 띄는 모습일 겁니다.”




  리키 콜드런을 나서면서 리무스는 다시금 저게 정말로 전해질 지에 의문을 가졌다. 톰의 말대로 리키 콜드런은 물건을 맡아주는 곳이 아니었다. 갈레온 주머니까지 같이 주었으니 한동안은 보관이 될 지 몰라도 친구들의 말처럼 30, 40년 후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오히려 그런 불확정성을 딛고 전해졌을 경우의 극적인 면을 더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무니 너도 하는 거다. 시작. 금지된 시간 장난을 즐기는 특별한 누군가들을 위하여, 하드핸드와 혼즈, 허니이기를 거부한 그냥 무니와 더불어 빨간 백합 아가씨가 기꺼운 마음으로 보내는 메시지.’

  ‘……표절?’

  ‘어허. 시리즈.’


  리무스의 말을 제임스가 단호하게 부정하는 사이 시리우스가 낄낄거리고 웃으면서 서두를 떼었다.


  ‘안녕. 어쩌면 지금 거기는 크리스마스일지도 모르겠네. 메리 크리스마스.’

  ‘너무 뻔한 거 아냐?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 메리 크리스마스. 릴리?’

  ‘휴, 결국 너까지 동참하는 거야, 무니?’

  ‘자 그럼 릴리부터. 미래의 아들이 듣고 있어.’

  ‘으음, 그렇게 말해도. 아니 그렇게 말하니까 더 긴장되잖아.’

  ‘그럼 내가 먼저 할까? 해ㄹ…… 해피 버스데이 투유.’

  ‘갑자기 생일 축하?’

  ‘우리가 예정대로 결혼하면 우리 아들 생일은 여름쯤이 되지 않겠어, 예비 미즈 포터?’

  ‘그야 모를 일이죠, 미스터 포터.’

  ‘그러게, 미스터 포터.’

  ‘너무 성급하네, 미스터 포터.’

  ‘…… 어, 이거 왠지 데자뷰가.’

  ‘푸. 릴리 아직 생각중이면 그럼 리무스. 자, 미래의 아들에게 한 마디?’

  ‘나도 아직 생각중인데.’

  ‘둘 다. 너무 소극적이야.’

  ‘그렇게 말해도…… 미래의 아들에게, 음, …… 네가 태어난 것 자체가 내겐 기적일 거야.’

  ‘음?’

  ‘그게 뭐야.’

  ‘이상해? 말 그대론데. 난 별로 결혼 생각도 없고. 그러니까 나중에 만약 아이가 생겼다면 정말로 기적이겠지.’

  ‘오, 리미…….’

  ‘아니 릴리, 감동받으라고 한 말이 아닌데.’

  ‘감동적이잖아. 네가 태어난 건 기적이란다, 라니. 정말 사랑스러운 말이야.’

  ‘하하…… 나중에 릴리 네가 그렇게 말해줄래?’

  ‘그럴까? 그럴게. 그럼 미리 생일 축하한다, 리무스의 아기야.’

  ‘…… 미리? 어…… 생일 축하한다.’

  ‘풉, 푸하하. 완전 어색해 무니.’

  ‘당, 당연하지. 패드풋은?’

  ‘난 했잖아.’

  ‘그건 생일 축하 아니잖아.’

  ‘꼭 생일 축하 인사만 인사냐.’

  ‘…… 아니지.’

  ‘거봐.’

  ‘푸하하. 어, 이거 저장 시간이 얼마나 돼?’

  ‘글쎄, 다 들어갔겠지 뭐. 좋아. 아까 주머니 어디다 뒀어?’

  ‘? 이대로 보내려고?’

  ‘뭐 어때, 자연스럽고 좋잖아?’

  ‘잠깐 기다려봐 제임스, 나 아직 못했어. 어, …… 곧 만나자?’

  ‘곧?’

  ‘? 잠깐, 곧이라고? 릴리? 달링?’

  ‘아냐, 그런 뜻이 아니야.’

  ‘푸하하.’




* * *




  “아직 영업 시간 아니에요.”


  지팡이를 휘둘러 물걸레를 움직이게 하며 준비하던 한나는 리키 콜드런 문을 열고 들어서는 후드를 푹 눌러쓴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다.


  “술 마시러 온 게 아니라서요.”

  “주점에요?”

  “네. 맡긴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저희는 술과 안주만 제공합니다 손님.”


  한나는 난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후드를 눌러쓴 사람은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약 40년 전에 혼즈와 하드핸드가 맡긴 물건을 주세요.”

  “저희는, …… 40년 전이요?”


  그것은 한나가 톰으로부터 리키 콜드런을 인수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한나는 기억을 더듬어 톰에게 가게를 인수받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 때 전수받았던 것은 대부분 주점 운영과 관련된 것이었고 일부는 단골 손님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그 중에 혼즈와 하드핸드라는 이름이 있었는지 떠올리다가 한나는 문득 카운터 아래에 손을 더듬었다. 낡아서 후들후들한 주머니 하나가 만져졌다.


  “어 그러니까, 인수자로 눈에 띄는 사람이 온다고 했다는데…….”


  그러자 카운터 앞에 서있던 사람이 후드를 벗었다. 한나는 잠시 후에야 탄성을 내고 주머니를 꺼내 건넸다. 그는 얼른 다시 후드를 썼지만, 한나는 주머니를 바라볼 때의 눈빛이 몹시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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